정주성 목사님 칼럼
수련회후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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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겨울수련회는 역대 수련회 중 가장 수련회다운 수련회였다고 평가된다. 주제에 맞는,
연령에 맞는, 또는 강사 스타일에 맞는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참여한 모두가 깊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어떤 특정한 이슈가 아니라 청년기에 꼭 터치되어야 할 너무나 실제적인
고민과 문제가 말씀 안에서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가이드라인만 제시 받은 것이 아니라
함께 공감하고 아파하고 느꼈기에 그 안에 눈물과 속시원한 해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련회를 다녀온 한두 주간이 지난 지금 주위에 많은 청년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본다. 삶의
문제는 여전하고, 얼굴에 기쁨은 보이지 않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이란 말이 있다. 원래
심리학에서 나온 용어이지만 요즘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두루 쓰이는 말이다. 이 용어는
신체적인 손상과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고에서 정신적으로 충격(trauma)을 받은 뒤에 나
타나는 다양한 신체적 및 정신적인 증상들을 총체적으로 지칭한다. 이 용어를 패러디해서
‘수련회후 증후군’이란 말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청년부를 사역하면서 여러 차례 수련회를
경험했는데 수련회를 마친 직후를 관찰한 결과 분명 수련회후 증후군이란 말을 붙일 만한
영적 신앙적 증상들이 발견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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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는 특별한 시간이다. 수련회에 올라가는 마음의 동기부터 이미 은혜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번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큰일 난다는 절박감에 더욱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게
된다. 수련회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평소보다 더욱 뜨겁게 오랜
시간 찬양하고, 말씀도 더욱 풍성하다. 새벽, 아침, 저녁으로 이어지는 말씀엔 응집력과 집중
력이 있다. 주제도 대개 꼭 필요한 말씀이다. 말씀으로 깊은 터치를 받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드려지는 기도도 뜨거울 수밖에 없다. 빨리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쫓기지 않으니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해질까. 조별모임을 통해서 다른 사람이 은혜 받는 모습을 보며 자극을 받고,
나의 문제를 다른 사람들이 진정으로 기도해주는 영적 교제의 체험도 너무 귀하다. 이러니,
수련회 때 은혜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렸으니 상한
심령이 회복되고, 확신으로 가득하고, 기쁨에 차서 집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수련회를 마치고 집에 오는 순간 모든 상황은 달라진다. 우리의 시선은 그때부터
분산된다. 내 관심을 끌기 위해 세상은 소동한다. 이일저일로 마음은 분주해진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묵상하는 시간은 급격히 줄어들고, 시시때때로 주위 사람들에 얽히고, 인터넷에
시간을 빼앗기며, 세상 일로 바빠진다. 수련회 때 받은 은혜, 누렸던 기쁨은 어느새 오간데
없다. 그러니 수련회 무용론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수련회 가도 그때만 좋지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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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럴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래도 1년에 두 차례 수련회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 대한 영적 시각을 회복하고 사는 것이랑 전적으로 현실 속에
매몰되어서 살아가는 것이 어찌 같을 수 있을까? 그래도 수련회후 증후군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 않냐고? 아니다. 비결이 있다.
비결은 수련회의 경험을 나의 일상에 채우는 것이다. 수련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날마다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며 살라. 찬양으로 하루의 빈틈을 채우라.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
늘 무릎 꿇고 기도하라. 세끼 육신의 양식으로 주린 배를 채우는 것보다 더 갈급한 마음으로
영의 양식을 구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라. 셀가족이나 주위 믿음의 사람들과 항상 삶을
나누고 중보하는 관계를 유지하라. 매일 개인적 수련회 속에 머물라. 이것이 수련회후 증후군
을 예방할 수 있는 비결이다. 수련회는 이러한 삶이 가능함을, 능력이 있음을 맛보게 한 ‘시식회’
였다. 이제 삶 속에서 수련회적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수련회가 필요한 이유이고, 수련회에서
진정 배워야 할 것이다. (1/22/2009 정주성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