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을 넘어라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그런데 선지자 중 유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도망친
사람이 바로 요나다. 도망친 요나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을 보면 더 어이없다. 호세아
처럼 자기 인생을 포기하는 일도, 예레미야처럼 매국노로 내몰려야 하는 메시지도 아니다.
다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만 전하라는 것이다. 얼마나 쉽고, 얼마나
당연한 메시지인가? 그런데 요나는 도망 쳤다. 어디로? 당시 유대인들에게 땅 끝이라고 알려진
가장 먼 곳, 다시스로. 복음을 위하여 땅 끝까지 가야 하는데 복음을 거부하기 위하여 땅 끝까지
간 사람이 바로 요나다.


왜 그랬을까? 고정관념 때문이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도 유대인이었고, 예레미야의 사역의 대상도
이스라엘의 지도층이었다. 그런데 요나는 이방인, 그것도 당시 고대근동의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였다. 어쩌면 요나에게 호세아에게 맡겨진 사명, 또는 예레미야에게 맡겨진
사명이 주어졌다면 순종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나는
오직 이스라엘 백성만이 하나님의 백성
이고, 이방인은 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고정관념
속에 있었고, 그 고정관념 때문에 니느웨를
심판하지 않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동조할 수 없었다.


사울왕은 전쟁을 시작하기 전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사무엘이 드려야 할 제사를 급한 나머지 자기가 제사를 집례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일이었다. 이 일은 그가 하나님께 버림 받게 된 결정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이런 중대한 일이 어디
에서 비롯되었는가? 고정관념 때문이다. “나는 급한 상황이다. 나에게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
이런 조급증, 이런 고정관념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게 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소아시아 7교회 중 주님으로부터 가장 질책을 많이 받은 교회였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
. ‘나는 부자다, 나에게 부족한 것이 없다’는 고정관념 속에
그들은 갇혀 있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그들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았고, 겸손하게 엎드리지 못했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는 고정관념의 깨어짐을 경험했다. 한국 사람에게는 양궁이나 태권도가
금메달 목표였지 육상이나 수영은 절대 안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신체적인 조건을 극복할 수 없
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태환 선수로 우리의 고정관념이 깨어졌다. 다리가 길어야 멋있다는 고정관념은
마이클 펠프스가 깨뜨려 주었다. 긴 팔과 짧은 다리를 가진 그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멋있었
다.


고정관념은 깨뜨려져야 한다. 믿음의 사람은 고정관념을 넘어야 한다.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방법으로
말씀과 기도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베드로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때 자신의 고정
관념을 깨뜨리고 이방인을 향해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수 있었다. 명심하라. 고정
관념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치 못하도록 막는다. 고정관념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도 곡해하게 만든다.
고정관념은 하나님의 뜻에 결국 불순종하게 만든다. 고정관념은 성령의 역사를 가로 막는다.
                                                                                                      
(8/24/2008 정주성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