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성 목사님 칼럼
미국에서 정전사태를 겪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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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을 맞이하는 내 마음은 약간 들떠 있었다. 작년 여름 더위로 하도 고생한 터라 진작부터
제대로 된 에어컨을 하나 장만하겠다고 벼르다가 결국 12,000 BTU짜리로 준비를 마쳤던 것이다.
이렇게 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여름 몇 분 손님들이 우리 집에 묵기로 예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건너 온 황세원 형제, 그리고 우간다 선교사로 오래 사역하다가
지금은 오하이오주에 계시는 목사님 내외가 한꺼번에 우리 집을 묵고 있던 때 우리 집은 완전한
어둠, 한여름의 후끈한 열기 속으로 100퍼센트 노출된 상태였다.
집을 떠나면서 선배 목사님은 한마디 내뱉었다. “모처럼 우간다 생각이 나서 좋았어요.” “그렇다
면 감사한 일이네요‘라고 응대한 내 머리 속엔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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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간의 정전기간 동안 내 모든 감각은 전혀 새롭게 적응해야 했다. 매일같이 반복해왔던 양치질,
샤워, 옷 찾아 입기, 그 어느 것 하나 다 낯설고 어색한 일이었다. 어둠 속에서 치약을 찾아 칫솔에
묻히고 거울 없이 양치질해 본 적이 있는가. 더듬거리며 비누를 찾아 샤워를 해 보았는가. 그나마
촛불 하나를 켜서 속옷을 찾아 꺼내 입을 수 있었던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아이들이 잠든 늦은 밤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는 동안 신문이나 읽을거리를 들 수 없었다. TV를
켤 수도 없다. 컴퓨터도 안된다. 얼른 휴대폰을 찾아 꺼내들었지만 배터리도 나가 있다. 깊은 어두움
속, 전구에서 나는 소리도 없는 적막한 고요. 잠은 오지 않고 이 시간을 무엇으로 견뎌야 할까? 예전엔
어둠이 친구인 적이 있었다. 어두운 산에서 몇 시간 앉아있던 적도 있었다. 적막 속에서 내 영혼의
안식을 누리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이런 것이 낯설기만 하다. 나는 과연 지금 무엇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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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8일이라고 예고되었다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것이다. 한 시간 후쯤이면 전기가 올지 모른다
는 기대는 8일 내내 계속 되었다. 그 기대감 때문에 냉장고 안의 음식도 한꺼번에 버리지 못했다.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려던 아이스크림 케익부터 시작해서 상해가는 순서대로 하나씩 버려야 했다. 교역자 수련
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마침내 집에 전기가 들어온 것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아이들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기대 속에 사는 사람은 ‘만세!’를 부를 때가 온다. 곧 오실 것 같은 그 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
도인들과 더불어 그날에도 힘차게 ‘만세!’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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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간의 정전기간 동안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세탁문제였다. 세원 형제는 빨래를 하겠
다고 몇 군데 Laundromat을 돌다가 땀만 흘리고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집 근처가 다 정전된 탓이다.
빨랫감은 혼자 쌓여가는 게 아니었다. 빨랫감과 더불어 형체 모를 답답함과 울분도 함께 쌓여갔다.
혹시 소문이 사실일까? 정전도 가난하고 영어 잘 못하는 동네를 골라서 찾아온 것이라고. 베이사이드는
괜챦다던데. 플러싱도 문제 없는데. 왜 이 동네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할까? 역시 어려움이 있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 연민에 빠지는 일이다. 정전사고가 없는 사람들을 볼 게 무어냐? 그들이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다면 감사한 일이지. 나보다 훨씬 심각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도 많다. 정전기간 동안 문을 열지
못한 식당, 냉장냉동 보관한 엄청난 식품을 눈물로 다 버려야 했던 마켓, 비즈니스를 하는 분들의 손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우리야 몇 일간 단기선교, 광야체험을 했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감사한 일 아닌가.
“나의 하나님, 저들의 아픔을 위로해 주시고 저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옵소서!”
(2006년 8월 정주성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