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성 목사님 칼럼
왕국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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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나온 책 가운데 이런 제목의 책이 있었다. ‘바보는 결심만 한다!’ 어떤 통계를 보면, 실제로
결심한 사람 가운데 그 일을 성취하는 사람은 다만 1%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올 해를 시작하며 우리는 큰 은혜를 받고 놀라운 비전을 붙잡았다. 그러나 일상생활 가운데 그 은혜
를 지키고 비전을 붙잡으며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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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이 처한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라. 소년 다니엘은 깊은 절망 가운데 있었다. 조국 유다가 멸
망하고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졌다. 어린 시절 그는 성전을 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성전이 있는 한 결단코 망하지 않으리라는 확고한 믿음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성전이 무너지고 남유다는 멸망하고 말았다. 게다가 그는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바벨론
으로 포로로 붙잡혀 갔다. 이런 절망적 형편에 처했을 때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은 <생존본능>이다.
이왕 조국이 멸망하고 말았다면 이제 내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조금이라도 유능한 사람이라면 출세의 기회를 붙잡아서 성공해야겠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다니엘은 눈앞의 현실에 끌려 다니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비전을 잃지 않았
던 ‘비전의 사람’이었다.
다니엘은 바벨론과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대제국을 넘나들며 제국의 위대한 영광과 위엄을 보았다.
그렇지만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어떻게 다니엘은 대제국의
영광에 압도당하지 않고 왕국 비전을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바로 그의 기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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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과 야망은 다른 것이다. 야망은 인간의 욕심이다. 그러나 비전은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다. 야망이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것이라면, 비전은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것이다.
그래서 그 비전을 계속 붙잡기 위해서는 계속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니엘의 기도생활의 단면을 보라. 다리오 왕 때에 다니엘은 모든 장관들 중에서 단연 뛰어나서 왕이
그를 나라의 제2인자인 수석총리로 삼으려고 했다. 그러자 총리들과 장관들이 시기하였는데 아무리
틈을 찾아보아도 다니엘을 넘어뜨릴 허점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들 중 어느 한 사람이 제안하기를 이
다니엘이라는 놈은 어느 모로 보나 허물이 없는 완벽한 사람이라 그가 믿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우리가 고소하지 않는 이상 달리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왕에게 나아가 법을 하나
만들기를 건의하였다. 즉 온 국민의 충성심을 확인하기 위하여 앞으로 한 달 동안에 왕 외에 어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다. 왕은 이 법안에 서명하고
공포했다.
다니엘은 왕의 법령을 알았다. 만약 우리가 다니엘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여기에
항상 예루살렘을 잊지 않고 그곳을 소망하면서 살고 있는 다니엘의 자기정체성이 나타나 있다. 자
신이 비록 머나먼 이국 땅에서 수석총리의 신분으로 있지만 자기의 진정한 고향은 예루살렘이며,
자기의 진정한 신분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지 않고 있었다. 또한 그는 신앙적 위기 앞에서 갑작스
레 기도한 사람이 아니라 ‘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했다. 그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지
위와 목숨의 위기 앞에서도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했다. 그의 모든 능력은 이러한 기도에서 연유하
는 것이었다.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함으로써 그는 늘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덧입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니엘의 기도의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니엘은 무사할 수 있었고, 그를 고소
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사자의 밥이 되었다. 제국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드러났고,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되는 비전이 성취되었다. 다니엘은 비전을 품고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9:1-3). 그가
이스라엘을 품고 하나님께 드린 중보기도는 얼마나 감동적인가(9: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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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다니엘이 처한 환경과 같다. 다니엘이 이국 땅 바벨론에서 살아야 했듯
이 우리가 사는 세상도 세속 문화가 판치는, 어쩌면 포로 된 상태와 같은 것인지 모른다. 생존하기에
급급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대학에 들어가기가, 직장에 들어가기가, 직장생활에서 낙오하지 않기가
결코 쉽지 않다. 우리의 현실은 다니엘이 처지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이런 현실 가운데서 우리는 두려움을 가지고 생존하려고 발버둥 치며 성공에 집착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젊은이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실 가운데서 우리는 다니엘처럼 비전의 사람으로
살 수도 있다. 기도의 사람으로 살 수 있다. 제국의 영광 가운데서도 황무한 이스라엘의 영적 기초를
세우기 위해 날마다 기도했던 다니엘처럼 오늘 이 땅의 황무함을 아파하며 무너진 단을 수축하고 영적
기도를 쌓는 일에 우리가 쓰임 받기를 소원한다. (10/14/2008 정주성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