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기다리며

이제 유월로 접어들었다. 벌써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가 꿈틀거린다. 한 해의 절반을
지나는 감회 때문일까? 아무래도 서서히 달아오르는 월드컵 열기 때문이리라. 지난 2002년
월드컵이 꿈처럼 지나간다.


2002년 월드컵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첫 사람은 누가 뭐래도 히딩크 감독이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전 국민적인 사랑과 존경과 지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히딩크가 처음부터 이런 영광을
누렸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언론의 히딩크 흔들기, 국민들의 의심의 눈초리는 월드컵 직전까지
이어졌었고 그 와중에서 오직 자신의 축구철학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 길을 고집했던 히딩크는
마침내 영광의 트로피를 높이 들었다. 히딩크가 없었으면 과연 4강에 이를 수 있었을까? 그때
우리는 ‘한 사람 리더의 중요성’에 대해 눈물 흘리며 깨달았다. 이번에도 우리는 아드보카트라는
또 하나의 명장을 리더로 세우고 다시 월드컵에 도전한다. 아드보카트는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축제의 한마당을 선사해줄 것인가?


사실 2002년 전까지 한국축구는 세계의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 월드컵 무대에서 단 한 번도
1승을 올리지 못했다. 그게 우리의 수준이었다. 유럽 팀만 만나면 주눅이 들어 버렸다. 체구가
작고, 저변이 약하고, 투자가 열악한 한국축구의 태생적 한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
었다. 우리는 할 수 있었고 그동안 우리를 억누르고 있었던 콤플렉스를 완전히 벗어버렸다. 더
이상 한국축구는 변방이 아니다. 1승도 못한 팀이 4강에 이르는 기적이 이루어졌다. 기적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가 기적을 이룰 수 있고, 전설을 만들 수 있음을 경험한 것
이다. 그 기적 앞에서 선수들은 눈물을 흘렸고, 전 국민은 감동했다. 기적을 경험하는 삶이야
말로 얼마나 매혹적인 인생인가! 우리는 이번 유월에도 그 매혹적인 기적을 고대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그해 6월 꿈같은 기쁨과 감격 속에서 보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6.25가 있는 호국
보헌의 달을 이렇게 즐겁게 보낸 적이 없었다. 한국경기가 끝난 뒤 거리의 응원객들은 시내에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새벽 서너 시까지 시내를 돌아다녔다. 나와
우리 가족도 일산에서 나와 대학로를 누비며 새벽을 다녔다. 남의 승용차에 올라간 사람들,
트렁크를 열고 그 안에 들어간 사람들, 그때는 교통신호도, 딱지(티켓)도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이 다 양보하고 용서하는 모습이었다. 왜 그랬는가? 기쁨이 넘쳐나니까. 지방선거가
끝난 2006년 6월, 좌절과 적대감으로 팽배해 있는 한국국민에게 다시 이런 기쁨의 감격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때 난 깨달았다. 성경이 왜 그리스도인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했는지. 우리가 받은 은혜,
우리가 누리는 구원을 안다면 우리는 그런 승리의 기쁨을 넘치도록 누려야 한다. 기쁨이 넘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용납할 수 있다. 승리를 경험한 사람은 쩨쩨하게 살지 않는다.

사실 월드컵은 FIFA의 축제만이 아니다. 월드컵은 축구선수들만의 경기가 아니다. 월드컵은 전
국민의 축제이고, 전 세계의 잔치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짜 월드컵의 모형이다.


성경은 또 하나의 월드컵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것이 진짜 월드컵이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
앞에 당한 경주’, 나는 이것을 「또 하나의 월드컵」이라고 이름붙이고 싶다.

히딩크 감독보다 더 탁월한 스승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를 지도하시는 월드컵!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든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본다면 우리에게 놀라운 승리와
기적이 보장된 월드컵! 붉은 악마보다 더 많고 더 열렬한 관중이 우리를 지켜보며 응원하는 월드컵!
아벨, 아브라함, 야곱, 모세와 같은 전설적인 스타들이 이미 이 대회를 빛낸 바 있고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고대하고 있는 월드컵! 이 진짜 월드컵의 주역으로 우리는 부름 받고 있다.
                                                                                                  (5/17/2006 정주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