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김연아의 눈물’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전세계인이 주목하는 가운데 150.06이라는 피겨스케이트 사상 유례가 없는 점수로 여왕의 데뷔를 알린 뒤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퀸연아는 눈물을 흘렸다. 그때 조국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후회의 눈물이 아니었다. 통한의 눈물이 아니었다. 한 줌 아쉬움없이 최선을 다한 사람의 눈물, 마침내 최선의 결과를 맛본 벅찬 감격의 눈물이었다. 그런 눈물은 아무나 흘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복 받은 사람이다.

 

 

김연아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 일찍 유명해져 버린 것이 그녀의 남은 생애를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 누구도 김연아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너무 일찍 인생의 정점을 맛본 사람들은 대개 불행해지기 십상이다. 국민적 영웅이 된 스포츠 스타, 온 국민의 연인이었던 무비 스타, 화려한 조명 속에 입지전적 성공을 구가한 사람들. 꼭대기에 오르려고 발버둥하는 인생길에서 남아 있는 기나긴 사간에 그들은 이미 오른 꼭대기를 어떻게 내려가야 할까?

 

 

인생의 마지막이 정점인 사람들이 있다.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칠순을 맞을 무렵 바바라 월터스 쇼에 출연했을 때 바바라가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 “당신은 흥미진진하고 도전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중 최고는 언제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인 것 같습니다.” 그의 인생의 정점은 현직 미국대통령일 때가 아니었다.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도 아니었다. 생명이 남아있는 한 아직 자기 인생의 정점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젊디 젊은 생각이었다. 경영학의 대부 피터 드러커가 92세의 나이에도 계속해서 책들을 내고 있을 때 기자가 물었다. “당신의 책 가운데 최고의 책은 무엇입니까?” “다음에 나올 책입니다.” 이것이 드러커의 청년 정신이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마침내 십자가에서 이루셨다(막10:45). 열정을 다하여 최선을 삶을 경주했던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2-14). 청년들이여, 매 순간 최선을 다하라!. 최선의 결과를 맛보는 벅찬 감격의 눈물을 사랑하라! 하지만 인생의 정점이 결코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기억하라! 오늘도 정점을 향해 달려라!    (4.5.2010  정주성목사)